나의 영국 연수기-1

  벼룩은 자기키보다 200배나 높이 뛸 수 있고, 한 시간에 천 번을 뛰어오를 수 있으며, 또한 10만 배나 무거운 물건을 끌어당길 수 있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벼룩을 한동안 뚜껑이 덮여진 좁은 상자 안에 가두어 두면 그 뚜껑보다 높이 뛰어오르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뚜껑을 열거나 치워도 벼룩은 뚜껑이 덮여 있던 높이까지만 뛰어오르게 되는데, 그것은 벼룩이 상자로 인해 뚜껑이 덮여 있던 높이까지만 뛰는 습성을 익히고 뚜껑을 치운 후에도 오랫동안 그 습성과 페러다임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떨까? 우리들도 귀찮거나 힘들다는 이유로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타성과 관행에 따라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의 키보다 200배나 높이 뛸 수 있는 벼룩이 뚜껑까지 밖에 뛸 수 없게 된다면.

  20대 후반, 많은 생각을 가지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이른 아침, 시골 역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65분발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땐 잔잔한 흥분과 걱정이 교차되었다. 먼 나라에서 1년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낯선 이국땅에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잘 견딜 수는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즈음 어느새 열차는 공항 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항공 노조의 파업으로 스위스를 경유하여 영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안내 방송 속에 바쁘게 출국 수속을 마치고 SR177기에 몸을 실어 스위스의 취리히로 향했다. 외국이 처음도 아닌데 자꾸만 가슴이 떨려 왔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창밖으로 잠시잠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성냥갑 같은 집들을 뒤로 한 채 전날부터 쌓인 피로를 달래며 잠시 잠이 든 사이 어느새 비행기는 중국을 거쳐 몽골의 고비사막 위를 날고 있었다.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것만 같은 광활한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풀 한포기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모래뿐인 세계를 내려다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의 미약함을 느낄 때쯤, 갑자기 푸른색이 눈 안에 확 들어왔다. 3시간의 모래뿐이 사막을 비행한 뒤였다. 아마도 옛 소련의 우크라이나 지방인 듯 했다. 즐비한 아름다운 호수, 녹색의 언덕, 군데군데 모여 있는 그림 같은 마을들. 너무나 확연히 다른 갑작스런 변화에 신기함까지 더했지만 3시간 동안의 끝없던 사막의 모래 세계가 더욱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11시간의 긴 비행 끝에 비행기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취리히의 활주로 위에 힘겹게 지친 몸을 얹었다. 너무나 간단한 입국 수속에 놀라며 외국에서의 낯선 첫날이 시작되었다. 스위스의 관광 도시 [루체른]에서 [마리앙뚜와네뜨]와 스위스 용병들의 이야기가 담긴 [사자상][필라투스]의 전설이 숨어있는 [죽음의 산]을 톱니바퀴 기차를 타고 관광했다. 멀리서 요들송이 들리고 그림 같은 호수와 성당이 보이는 노천 레스토랑에서 한 잔의 맥주로 긴 여행의 피로를 달래기도 했다. 이튿날 오후 다시 제네바를 거쳐 SR836기에 몸을 싣고 드디어 영국의 히드로 공항에 내리니 712일 오후 730분이었다.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인 maria의 안내로 다시 버스에 지친 몸과 짐을 구겨 넣고 2시간 30분의 질주 끝에 도착한 곳이 최종 목적지인 bognor regischiches institute of higher education이었다. 마치 노예시장에서 노예들이 팔려나가듯이 마중 나온 hostsee들에 의해 유학생들은 한 명씩 미리 정해진 각자의 숙소(홈스테이)로 이끌려 사라졌다. 내가 머물 집이 발표되었을 때 튀어나오듯이 나온 두 마디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첫 번째 한 마디는 [당신 참 운이 좋군요. 그 집은 완전히 성같이 큰 집이랍니다.] 이어서 또 한 마디는 나의 hostess가 나에게 처음 건넨 말로 [당신은 정말 신이 내린 몸매를 지니고 있군요!]

(2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