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기사 [세계초대석] 취임 100일 앞둔 구철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장

            

“교민사회 목소리 내려면 한인회 더 키우고 뭉쳐야”

[세계초대석] 취임 100일 앞둔 구철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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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철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장이 26일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인회 사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젊은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에너지가 넘치는 강한 한인회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다. 세계 곳곳에 700만명 정도의 재외교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교포가 많이 사는 나라에는 대부분 ‘한국인연합회’(한인회)가 대표적인 한인 조직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교포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약 100만명의 교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에도 역시 한인 조직이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일제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오거나 일자리 등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와 온갖 차별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온 재일교포 1세대와 2세대를 중심으로 구성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중심 조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사업 기회 등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온 이른바 ‘뉴커머’는 민단에 쉽게 녹아들지 못했다. 성장 과정과 교육, 문화 등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뉴커머를 중심으로 2001년 5월20일 출범한 게 재일본한인회다. 18만여명의 뉴커머를 대표하는 한인회는 도쿄 본부와 오사카·나고야·시즈오카·가나가와·규슈 등 5개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다.


하지만 한인회는 민단과 ‘다른 길’을 가려는 게 아니다. 당장은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두 개의 조직으로 운영되지만 앞으로 하나가 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한일교류축제’ 등 공동사업을 통해 공통점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지난 5월 8대 일본한인회 회장으로 취임한 구철 회장은 “뭉쳐야 산다”며 “젊은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에너지가 넘치는 강한 한인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달 2일로 취임 100일이 되는 구 회장을 지난 26일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한인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취임 3개월이 됐는데. 

“2009년부터 한인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해 낯설지는 않지만 중압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00명 정도이고, 임원 등을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150명 정도다. 조직은 구성원이 많아야 목소리도 낼 수 있다. 회원을 많이 늘리고 싶다. 최근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한인회에 많이 들어오고 있어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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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민단이라는 ‘형님’격 조직이 있다. 한인회와의 관계는 어떤가.

“한인회와 민단은 앞으로 하나가 돼야 한다. 우리는 동포다. 하지만 당장은 교류하고 협력하는 체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매년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오는데 이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일본에서 계속 살아온 민단 구성원과는 조금 간극이 있다. 무리하게 합치는 것보다 공동사업 등을 통해 조금씩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한인회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뉴커머는 매년 생겨나는데 이들을 돕는 창구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일본 현지의 상황을 알려주고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한인회가 하고 있다. 한국어 스피치 대회, 뉴커머와 올드커머 간 만남의 장 주선, 지역 활성화를 위한 이벤트, 거리 청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뉴커머가 자연스럽게 일본 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1300만엔(약 1억4000만원)의 성금을 모아 기부하는 등 일본 사회를 위한 공헌활동도 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한·일 관계가 나빴지만 지난해 말 양국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로 관계 개선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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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는 아니고 조금 좋아진 것 같다. 비방은 서로 자제하는 것 같은데 예전처럼 좋은 분위기로 아직 돌아가지 못했다. TV프로그램을 보면 한국 음식점이나 한국 가게를 소개하는 장면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예전에는 거의 매일 볼 수 있었다. 한국 연예인들을 일본에 초청해 벌이는 이벤트도 사라졌고, 한국 음악을 소개하는 TV나 라디오 방송 같은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게 아직 와닿지는 않는다.” 

-우익단체들의 ‘헤이트스피치’ 등 혐한 활동이 활발했을 때는 어려움이 컸을 텐데 한인회는 어떻게 대응했나. 

“민단에 많이 감사하는 부분이다. 민단이 조직적으로 나서서 대응했고 ‘헤이트스피치 금지법’도 생겼다. 민단은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교민사회의 권익을 지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한인회는 정치적인 문제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자존심이 없다거나 애국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뉴커머는 비자 문제가 있다. 사건 등에 휘말려 비자가 재발급되지 않으면 사업체가 일본에 있어도 일본 재입국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니까 조직이 커지고 강해져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정치적 역량도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재일교포 3세, 4세 중에는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인회 구성원도 세대를 거듭하다 보면 모국어와 정체성 문제가 불거질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괜찮다. 뉴커머 1세대는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다. 그 자녀 세대도 대부분 한국어를 잘한다. 한국이 세계에서 자랑할 만한 나라가 됐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하지만 3세대, 4세대로 넘어가다 보면 한국어 교육 시설이 부족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 전에 한국학교 확충 등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갈 필요는 있다.” 

-일본에는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도 활동하고 있다. 한인회와 교류가 있나. 

“현재는 전혀 없다. 뉴커머는 한국에서 반공교육 등을 받아 대체로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또 법률상으로도 교류는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 나중에 여건이 갖춰지고 정치나 사상 문제를 떠나 스포츠나 문화 분야 등에서 서로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좋을 것 같다.” 

-일본에 오게 된 계기는.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고교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친 뒤 관광가이드가 될 생각으로 1989년 일본으로 건너왔다. ‘사비 유학생’ 1호다. 어학원에 다니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 막노동, 파친코 점원, 택배 배달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2년 뒤에 니혼대학 상학부에 입학했다.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6년 만에 겨우 졸업하고 1997년 한국의 한 회사에 취업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뒤 직장생활을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무역회사를 차렸다가 외환위기로 문을 닫았고, 2000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와 지인의 무역회사에 취업했다. 그때부터 계속 일본에 살고 있다.”

-삼겹살을 사업 아이템으로 정한 이유는. 

“당시 일본에 삼겹살 전문점이 없었다. 돼지고기를 파는 가게는 있었지만 채소를 하나하나 따로 돈을 내고 주문해야 해 한국에서처럼 가볍게 삼겹살을 즐길 수 없었다.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02년 ‘돈짱’이라는 삼겹살 전문점을 차렸다.”

-사업이 크게 성공했다. 

“손님에게 보여주는 부분을 조금 더 신경썼다. 쌈 채소를 한꺼번에 내고, 파 채 무침도 잔뜩 주고, 삼결살에 김치도 같이 구워줬다. 한국에서는 흔한 장면이지만 일본에서는 생소해 손님들이 좋아했다. 소문을 타면서 일본 방송들이 맛집으로 소개하기 시작했고, TBS의 ‘오사마 런치’라는 프로그램이 2003년 한 해 동안 소개한 202개 점포의 423개 메뉴 중 1위로 선정되면서 ‘대박’이 났다.”

(구 회장은 현재 도쿄에서 돈짱 점포 15개를 직영점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4월에는 도쿄 신오쿠보에 3층 규모의 ‘돈짱 빌딩’을 신축했다. 이 건물에는 식당, 카페, 가라오케 등이 영업 중이다.) 

-교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처음 한인회 활동을 시작할 때는 봉사하는 마음이었고, 지금은 사명감을 가지고 하고 있다. 한인회는 나를 포함한 모든 교포를 위한 친목 겸 권익 보호 단체다.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교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조직이 커져야 목소리도 키울 수 있다. 뭉쳐야 한다. 한인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려주면 좋겠다.” 

도쿄=글·사진 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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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월 5일 출생 ●부산 ●니혼(日本)대학 상학부 경영학과 ●K·J LIFE 대표 ●재일본한국인연합회 부이사장, 이사장 역임 ●민주평통자문위원 ●도쿄한국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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