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한류 중심 신주쿠 한인타운

"전철역인 JR신오쿠보 역사를 나와 큰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30m쯤 걸어가자 한정식집 ‘남이섬’과 커피전문점 ‘커피프린스’, 삼겹살집 ‘서울역’ 등 낯익은 한글 이름의 가게들이 등장했다. 무료 잡지 배포대에 꽂힌 지역소식지들도 ‘월간 신동경’ ‘연예통신’ ‘시나브로’ ‘한국인생활정보’ 등 온통 한글 잡지들뿐이다. 현해탄을 단숨에 뛰어넘어 서울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본 속의 한류문화 중심지인 신주쿠 한인타운에 들어선 것이다.

회색 목도리에 ‘정윤호’(동방신기 멤버 유노윤호의 본명)라는 빨간 플라스틱 명찰을 단 여고생 2명이 ‘한류백화점’이라는 상호의 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들어가 봤다. 일본에서 한창 뜨고 있는 한류 걸그룹 소녀시대와 카라, 남성 아이돌 동방신기와 빅뱅, SS501 등은 물론이고 배용준과 장근석, 이병헌 등 한류 배우들의 각종 사진과 브로마이드, 음반, 화장품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지난달 1월18일 오후 도쿄 신주쿠 한인타운에 있는 ‘한류백화점’이 한국 드라마· 음악 ·영화 관련 각종 상품을 사려는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도쿄=김동진 특파원
매장 안에는 10대 여고생에서 20∼30대 직장 여성, 유모차를 끌고 온 아기엄마, 머리 희끗한 중년여성 등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 고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휴일에는 하루 2000여명이 찾아온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딸과 함께 왔다는 주부 미쓰나가 미유키(45)는 동방신기의 팬이라면서 “가창력이 대단한 데다 귀엽고 기특해서 응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히로시마, 나고야 등 멀리 지방에서 주말이면 친구들과 함께 야간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해 한국 음식과 노래, 드라마, 패션을 즐기고 돌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상인들은 귀띔했다.

일본 사회가 극심한 소비 불황에 허덕이고 있지만 한인타운만큼은 이런 한류 팬들 때문에 좀처럼 활기를 잃지 않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점포는 300여개에 달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신오쿠보 일대는 외국인 매춘부들이 골목에서 일본 남성들을 유혹하던 우범지대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겨울연가와 가을동화 등의 한류 드라마가 연이어 빅히트를 기록한 데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공동 개최되면서 양국 간 교류가 확대돼 한인 점포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지금의 한인타운으로 발전했다. 2001년 JR신오쿠보 역에서 술취한 일본인 취객을 구하기 위해 철로에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고 이수현씨 사건도 ‘신오쿠보=한국인’을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하지만 신주쿠 코리아타운의 형성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일본인 주민들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2008년 코리아타운이 한류축제를 열려고 했으나 이곳에 사는 일본인 주민들이 반대해 무산된 일이 있었다. 코리아타운의 한국 점포 주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재일본한국인연합회가 주민 설득에 나섰지만 “한인 점포들이 쓰레기 수거 룰을 지키지 않는다” “간판이나 상품을 함부로 둬 도로를 사유화한다” “위법주차가 눈에 띈다”는 등의 항의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원들은 “한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매달 두 번째 화요일마다 코리아타운 일대에서 클린 활동(청소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한인들이 클린 활동 등으로 일본인 주민들과 융화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코리아타운을 바라보는 지역주민들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김동진 특파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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