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래인 생막걸리 전도사 한길수사장 경향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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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일본속의 한국인 신도래인을 찾아서] ② 생막걸리 전도사 ‘나마마코리가’ 한길수 사장
“우리 술 막걸리로 日 술문화 확 바꾸겠다”
20년전 막걸리와 첫 인연… 2007년 양조장 오픈
누룩냄새 억제하고 시큼한 맛 높이는 등 노력
야마나시현 공장 활용땐 日 전국 커버 가능성
  • 일본의 도쿄도 신주쿠의 오쿠보 거리에 가면 ‘생막걸리 전도사’ 한길수(59) 사장을 만날 수 있다.        
            
    ◇일본 도쿄도 신주쿠(新宿)구에 있는 일본 최초의 한국식 전통 막걸리 양조장에서 한길수 사장이 12일 막걸리를 빚고 있다.
    한 사장은 일본 최초로 전통 막걸리 양조장을 차려놓고 생막걸리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신도래인’(新渡來人)이다. 한류 바람을 타고 막걸리를 즐기는 일본인들이 많이 늘었지만 대부분 한국에서 건너온 살균처리 막걸리를 마신다. 하지만 그는 니혼슈와 사케가 지배하는 일본의 주류시장에서 전통 생막걸리의 살아 있는 맛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한 사장이 막걸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 당시 일본계 토목설계전문업체의 서울지사에서 일하던 그는 차를 몰다가 우연히 라디오에서 ‘캔막걸리 개발’소식을 들었다. 강원도 횡성의 음료업체 ‘강원농산’이 장기간 보관이 어려워 대량 유통이나 수출은 꿈도 꾸지 못했던 생막걸리의 단점을 극복한 캔막걸리를 발명했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듣자 평소 일본을 상대로 자신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었던 한 사장은 “바로 이거다”라며 무릎을 쳤다.        
            
    그는 곧장 차를 몰아 강원농산 조천영 사장을 찾아갔다. 막걸리의 세계화를 꿈꾸고 있던 조 사장은 “일본에서 캔막걸리를 판매하겠다”는 그의 제안에 흔쾌히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기대에 부풀었던 두 사람은 뜻하지 않은 벽에 부딪혔다. 당시 한국의 주류법은 양조장의 막걸리 판매를 지역적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A지역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는 그 지역에서만 팔아야지 타 지역에 유통시킬 수 없었다. 원래 보관유통이 어려운 전통 생막걸리의 특성 때문에 생긴 법인데 뜻하지 않게 막걸리 수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은 국회로 뛰어갔다. 국회의원들에게 주류법 때문에 막걸리 수출 길이 막혔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여야 의원들은 막걸리 수출에는 공감했지만 쉽사리 법을 개정하려 하지 않았다. 지역에서 유지 노릇을 하고 있는 양조장 주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2년간 의원회관 문턱이 닳도록 뛰어다녔지만 헛수고였다.        
            
    1992년 두 사람은 할 수 없이 생막걸리 수출을 단념했다. 한 사장은 2년간 조 사장을 도와 막걸리 제조기술을 익히면서 뒷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 사장은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1990년대 중반부터 전화카드 사업과 인터넷 전화 시스템, 노래방 시스템 등 다양한 사업을 하며 막걸리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했다.        
            
    그런 그가 막걸리와 다시 연을 맺은 것은 2005년 신주쿠에 한식당 ‘하루방’을 개점하면서다. 한류 붐을 타고 도쿄 여기저기에 한식당이 생겨나던 시절이었다. 그는 성공을 위해선 하루방만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밤잠을 줄여가며 레시피 개발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문득 “프랑스 요리와 와인처럼 한식에 생막걸리를 배합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시 한국에서 수출된 막걸리가 이미 일본 내 한식당에 공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맛으로는 니혼슈나 와인, 맥주 등과 경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생막걸리를 일본에서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한 사장은 양조장을 만들기 위해 2005년 7월 신주쿠 세무서를 찾아갔다. 한국인이 일본에서 막걸리라는 낯선 술을 만들겠다고 하자 세무소 직원들은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설득했다. 세무소에서 요구하는 각종 신청서류를 만들어 제출했다가 거부당하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라면 2박스 분량의 서류를 고치고 또 고쳐서 상담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가까스로 접수를 마쳤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일본 국세청의 까다로운 심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국세청은 주류전문가 6명을 동원해 한 사장의 막걸리 생산능력과 식품안전을 맡길 만한 사회적 신뢰성을 갖췄는지 등을 수차례 철저하게 조사했다.         
            
    2007년 5월 거의 2년 만에 허가가 떨어졌고 40평 정도의 조그마한 양조장을 만들 수 있었다. 일본 최초의 막걸리 양조장이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그는 양조장 옆에 ‘나마마코리가’(생막걸리집)라는 상호의 가게를 차렸다.        
            
    생막걸리가 우수하기는 하지만 일본 시장을 뚫기 위해선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했다.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누룩 냄새를 억제하고 시큼한 맛을 더 높이는 등 맛개발에 몰두했다.        
            
    덕분에 손님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재일동포들이 운영하는 식당 등을 상대로 생막걸리를 만들었다고 소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한두 곳에서 샘플을 보내 달라고 하더니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아직은 양조장 규모가 작아서 하루 500병(1ℓ 기준)밖에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문을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사장은 오는 3월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쯤 떨어진 야마나시현으로 양조장을 옮긴다. 니혼슈와 사케를 만들던 그 지역 양조장이 불황으로 망하면서 이를 인수한 사업가가 한 사장에게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한 것이다. 3만4000ℓ짜리 양조탱크만 10여개가 있는 이 공장을 잘 활용하면 일본 전국을 커버할 수 있다.        
            
    “그곳에서 2000ℓ부터 시작해 점점 양을 늘려가면 머지않아 일본 전역의 지하철, 열차 역 앞마다 있는 다치노미야(서서 마시는 술집) 거리에 생막걸리 가게가 하나씩 들어서는 날이 올 겁니다. 그때는 일본의 술문화를 이야기할 때 막걸리를 뺄 수 없을 겁니다.”        
            
    막걸리로 일본 주류문화의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며 활짝 웃는 한 사장의 얼굴에서 일본의 막걸리 장인 1호의 자긍심이 짙게 묻어났다.        
            
    도쿄=김동진 특파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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