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석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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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석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장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감동과 환희를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선수들도 역사에 남을 성적을 올리고 있지만 국내외 동포들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번 응원은 어떤 조직이나 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 모인 것입니다. 외국에 와서 살며 느끼는 것이라 더욱 남다릅니다. 우리 한인회도 누가 시켜서 만든 조직이 아니고 스스로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어서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일본에 건너와 사는 재일동포들을 이르는 ‘뉴커머’들의 모임으로 지난해 5월 창립한 재일본한국인연합회(한인회)의 김희석(50) 회장은 월드컵 응원의 자발성과 연결시켜 재일본한국인연합회의 의의를 강조했다. 그는 한-일 관계의 앞날에 대해 “역사로 인한 벽을 정부나 국가 차원에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월드컵 공동개최 과정에서 나타난 공동응원이나 일본내 한국음식점 등을 통한 교류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앞으로 민간교류가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이곳 신주쿠구 쇼쿠안 거리에서도 월드컵 응원 열기가 대단한데.

=쇼쿠안 거리뿐만 아니라 부근의 오쿠보 거리와 가부키초의 코마극장 등에 사람이 꽉 찼다. 수천명이 경기가 끝난 뒤 거리행진을 했는데, 그 흐름 속에 젊은 일본 사람이 많이 합세해 함께 태극기와 일장기를 흔들며 “대한민국, 대한민국” “일본, 일본”을 외쳤다. 일본 경찰도 행진을 호위해줬다. 동포들이 “수고합니다”라고 하니까 “괜찮습니다. 축하합니다”라고 화답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가 한-일 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그런 방향으로 끌고가고 싶다. 이런 분위기를 살려 한-일 문화교류나 행사 같은 것을 해나갈 예정이다. 이런 열기를 보고 〈엔에이치케이방송〉에서도 한-일 관계에 기여하는 방향의 행사를 하자고 한인회에 제의해왔다.

-특별한 구상이 있는가?

=당장 큰 규모의 행사를 할 수는 없다. 바자회나 문화교류회 등 조그만한 것부터 같은 지역에 사는 동포와 일본 주민이 함께 모여 하는 것이 중요하다. 월드컵 공동개최로 타오른 열기를 사장시키기는 너무 아깝다.

-월드컵이 끝나면 우호 분위기가 식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좋은 기회를 살리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 한-일 관계는 민간 차원에서 엄청나게 가까워졌다고 본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이 8강에 진출했을 때 함께 축하행진에 참여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뉴커머로서 20년 이상을 지내고 있는데 그동안 한-일 관계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처음 왔을 때는 뉴커머의 수도 매우 적었고 일본인의 눈도 차가웠다. 지금은 수가 많이 늘어 우선 숫자의 힘을 느낄 수 있고 일본도 세계화 흐름 속에서 시각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쇼쿠안 거리의 1세대로서 지켜본 이곳의 변화는 어떤가?

=내가 91년 감자탕집을 내기 전만 해도 이곳엔 한국 식당이래야 고깃집인 야키니쿠집밖에 없었다. 토속적인 한국 식당은 전혀 없었고, 김치도 발효김치가 아니고 소금과 고춧가루를 버무려놓은 것 정도였다. 90년대 들어 한국 식당이 급격히 늘어 지금은 100곳이 넘는다.

-이곳에 한국 음식점 등 한국 가게가 급증한 이유는 무엇인가?

=애초 쇼쿠안 거리는 환락가인 가부키초와 상점가인 오쿠보 거리 사이에 있는 죽은 거리였다. 내 얘기여서 그렇지만, 이곳에 한국 가게가 집중된 데는 내가 한국 토종 음식점을 낸 것도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주요 고객이 한국 아줌마였다. 그러던 것이 6개월이 지나면서 거의 일본 사람으로 바뀌어 지금은 손님 대부분이 일본 사람이다. 일본 사람은 그때만 해도 마늘 냄새, 김치 냄새 하면서 한국 음식을 싫어했다. 하지만 일본 사람은 먹는 데 대한 호기심이랄까 도전심이라 강하다. 한국 토종음식을 먹어 본 뒤에는 맛이 입에 남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김치는 발효음식이 한번 먹으면 중독증이 생긴다. 이런 것이 원인이 돼 소문으로 일본 사람이 몰리면서 한국 음식점이나 식품점·피시방·미용실 등도 줄지어 들어서 지금은 이곳의 한국 가게만 200곳이 넘는다.

-쇼쿠안 거리 1세대로서의 애환이 있을텐데.

=죽은 쇼쿠안 거리를 한국 정서를 빌려 살려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지금은 일본 사람이 도쿄에서 한국 정서를 느끼려면 이곳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 거리가 한국의 문화사절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종류의 한국 가게가 많이 생기다 보니 경쟁 등 갈등도 있다.

-한국 가게가 집중되면서 일본 사람이 경계하는 경우는 없는가?

=실제로 일본 가게 주인들이 피해의식과 불만도 가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한인회도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을 3대 강령의 하나로 삼아 노력하고 있다. 자기만 벌어서 잘살자고 할 때는 감정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번 것의 20~30%는 공헌하자는 것이다. 일본인으로 이뤄진 상인회와도 만나 공동으로 지역만들기 활동 등을 논의하고 있다.

-뉴커머로서 바라보는 한-일 관계의 바람직한 방향을 얘기해달라.

=국가나 정부 차원에서 한-일 간에 쌓인 벽을 지우기는 어렵다. 바람직한 것은 민간 차원의 교류다. 음식점을 하면서 일본 사람이 김치와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도 깊어지고 시야도 넓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음식을 통해 이런 변화가 일듯이 앞으로 문화행사 등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가지면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본다.

-오래된 동포단체인 민단 등도 있는데 굳이 한인회를 만든 이유는?

=일본에는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민단과 총련이 있지만 이들 단체는 순수한 동포단체라기보다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이념단체다. 동포가 겪는 생활상의 애로사항을 하소연하거나 상담하기에는 너무나 벽이 높고 멀다. 더구나 민단은 45년 이전에 일본에 온 특별영주권자들의 조직이어서 뉴커머는 가입 자격도 없다. 뉴커머가 소수일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20만명에 육박한다. 누구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끼리 어려움을 토로하고 돕는 순수 목적에서 단체를 만들게 됐다.

-설립한 지 1년이 넘었는데 그동안의 성과는?

=지금은 성과를 운운할 시기가 아니다. 10~20년 뒤의 평가를 위해 노력할 때다. 욕심없이 몸집에 어울리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이 일에 나선 이유는?

=한국 가게의 규모도 점점 커져 기업 성격을 띠고 있고 동종 업종이 많이 생겨 마찰 여지도 많다. 이곳이 사실상 코리아타운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여기에 맞게 정리정돈할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도쿄/오태규 특파원ohtak@hani.co.kr


●김희석 회장은

김희석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장이 처음 일본 땅을 밟은 것은 22년 전인 1980년이다. 처음엔 친척이 하는 여행사 일을 도왔지만, 91년부터는 도쿄 신주쿠구의 쇼쿠안 거리에서 줄곧 감자탕집인 ‘소나무집’을 경영하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의 토종맛을 내는 음식점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당시로서는 모험에 가깝게 감자탕과 보리밥을 주요 식단으로 하는 음식점을 낸 것이 대박을 터뜨려, 이제는 일본의 음식 소개책에 대표적인 한국 가정음식점으로 실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는 그럼에도 분점 을 내지 않고 일편단심 한곳만을 지키고 있는 코리아타운의 1세대다. 그는 이에 대해 “왜 찾아오는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고 싶겠느냐”며 “그러나 나만 잘된다고 이곳저곳에 음식점을 내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욕심보다 조금 적게, 그러나 변함없이 하자는 것이 개인적인 철학”이는 것이다.

개성이 넘치는 뉴커머들의 조직인 한인회 회장이 된 것도 이런 여유있는 성품과 포용성에 기인한다고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초대 회장으로서 카리스마보다는 융화와 단결을 통한 기반 다지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민족교육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도쿄한국인학교 사친회장을 6년째 맡고 있다.


●인터뷰 후기

김희석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장과의 인터뷰는 한국이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이겨 8강 진출을 결정한 이틀 뒤인 지난 20일 도쿄 신주쿠구 오쿠보 거리 들머리에 자리잡은 한인회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꽤 강한 장맛비가 내려 썰렁했지만 사무실과 김 회장의 얼굴에는 이탈리아전 승리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신주쿠가 월드컵 기간에 재일동포 응원의 상징적인 장소로 떠오르고 이를 주도한 사람이 뉴커머임을 특별히 강조했다. 월드컵 응원을 통해 일본 안에서 쇼쿠안 거리가 ‘코리아 타운’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일본내 동포사회에서도 소외됐던 뉴커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들떠 있었다.

스페인과의 8강전이 열린 다음날인 23일 추가 취재를 위해 그와 전화통화했을 때는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거리 응원을 하느라 목이 쉬었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만들어진 이 귀중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국민이 서로 협력하며 사는 관계로 만드는 데 한인회 차원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쉰 목소리 때문인지 더욱 강한 의지와 진실성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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